20세기 화단의 거장 피카소는 ‘내 그림들은 모두 연구와 실험’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논리적 순서를 가진 ‘연구’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피카소나 그리스와 같은 입체파 화가들이 푸앙카레의 물리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은
고전적인 회화의 표현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당시 최첨단 과학으로부터
통찰력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19세기 초엽 영국의 화가 콘스터블은 하늘, 구름, 무지개와 같은
자연의 기상현상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이를 통해 당시 회화에서
색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한계를 뛰어 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 없이는 무지개와 같은 자연을 정확히 그릴
수 없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당시 기상학 연구에서 구름의 분류에
대한 지식을 얻었고, 무지개를 더 잘 그리기 위해서 굴절과 뉴턴의 광학을
공부했다.
- 둘다 이성과 상상력의 산물 -
예술가가 과학에서 지식과 영감을 얻는다면, 과학자들도 미술로부터
통찰력을 얻은 경우가 많다. 갈릴레오는 해상도가 그리 높지 않은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도 곧바로 달 표면이 울퉁불퉁하다고 인식했다. 이는 그가
젊었을 때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고 그곳에서 원근법과 음영(陰影)에
대한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독일 지리학의 거장 훔볼트는 영국의
화가 윌리엄 호지가 그린 열대 풍경을 보고 온도, 주민, 지형, 생태계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독특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미술로부터 직접 영감을 받지 않았더라도 ‘미적인 것’의 추구가
과학자들의 활동을 규정하는 경우도 많다. 20세기 물리학의 거장 하이젠베르크는
“자연이 극적인 단순성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수리물리학자 헤르만 바일도 “내 자신의 작업은
진리와 아름다움을 결합한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이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항상 아름다움을 선택했다고 역설했다. 과학자들의 미(美)에
대한 이런 집착은 “상상력이 아름답다고 포착한 것은 항상 참일 수밖에
없다”고 읊은 시인 키이츠의 시적 상상력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사람들은 과학과 미술이 마치 자석의 양 극처럼 상반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이성, 논리적 추론, 엄밀한 실험에 근거하는 반면에
미술은 상상력과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중요하다고 본다. 또 과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반해서, 미술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심성을 주관적으로 구성해낸다는 것이다. 과학과 미술을
이렇게 보았을 때, 둘 사이에 겹치는 부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둘이 상호작용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렇지만 최근의 과학사, 예술사의 연구들은 과학과 미술이 스펙트럼처럼
연결돼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과학에서도 상상력이 필요한 만큼 미술에서도
논리와 실험이 중요하다. 과학자의 발견이 탐험가가 무인도를 발견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구성’의 과정을 포함하듯이, 예술가의 창작도 마치
과학처럼 의미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성의 산물이고 예술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렇지
않다. 과학과 예술 모두 이성과 상상력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차이는 본질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미술은 과학으로부터 새로운 표현 매체, 새로운 세계관,
미술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 인간과 인간 활동에 대한 새로운 이해,
과학의 비전과 언어를 빌려오곤 했다. 반면에 과학도 예술로부터 새로운
표현 기법, 세상에 대한 새로운 경험, 새로운 비전과 과학적 세계관의
정당화를 제공받았다.
- 본질 차이보다 정도의 차이 -
특히 20세기 미술이 색채, 조형, 구조, 재료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미술가들은 DNA 이중나선이나 프랙탈과 같은 과학의
이미지를 소재로 쓰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한 해가 저무는 지금 과학자 여러분들은 하루 저녁 시간을 내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 현대 미술을 감상하다가 새로운
상상력의 도화선에 불이 댕겨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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