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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론과
일수사견(一水四見)
‘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아인슈타인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상대성이란 개념은 아인슈타인 이전에 이미 갈릴레이에게서
나왔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이와 관련해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서 있는 버스에 탔을 때, 옆의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치 내가 뒤로 가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비교할 만한 것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 우주선을 타고 있다면 그런 판단마저 불가능하다.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도시락을 먹는 경우 그 사람이 떠먹는
밥알의 속도는 얼마인가. 기차 안에 있는 사람은 밥알이 거의 정지해
있다고 할 것이고, 기차 밖에 서있는 사람은 밥알이 시속 100km의
속력을 날아간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누가 맞는가. 둘 다 옳은
이야기다.
뜰 앞의 잣나무가 정지해 있느냐 하는 질문에도 상대론은 똑같이
적용된다. 대부분 우리는 잣나무가 당연히 정지해 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는 태양 주위를 초속 30km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만약 태양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뜰 앞의 잣나무는 서울에서 대전까지
5초면 갈 수 있는 엄청난 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논의들은 모두 갈릴레이의 고전상대론에서 나온다. 여기서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같게 나타난다고 가정한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공간과 시간이다. 이 절대적인 공간과 시간의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에서는 전부 달라진다. 모든 사람에게
어떤 물체의 길이가 똑같이 보이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 즉, 각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물체의 길이가
달라지고,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이 흘러간다.
결국 관측하는 사람의 수만큼의 서로 다른 공간과 서로 다른
시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수사견(一水四見)으로 비유한다. 같은 물이라도
천상의 사람이 보면 유리로 장식된 보배로 보이고, 인간이 보면
마시는 물로 보이며, 물고기가 보면 사는 집으로 보이고, 아귀가
보면 피고름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의 물은 그것을 느끼는 모두에게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주관과 ‘물’이라는
객관 사이에 성립하는 인연에 의하여 서로 다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대상 세계가 어떻게 그려지는가는 문화적인
맥락도 작용한다. 무지개가 우리 눈에 왜 일곱 가지 색으로 보이는가.
이는 물방울 안에서 빛의 굴절과 반사 법칙이라는 물리학적 면과
우리 눈은 빨강부터 보라까지의 빛을 감지할 수 있다는 생물학적
면으로만 설명이 완전하지 않다. 에스키모인의 눈(雪)에 대한 이름은
우리보다도 훨씬 많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무지개를
빨강에서 보라까지 일곱 가지 색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려서부터 무지개란 그런 것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라는 주관과 ‘물’이라는 객관 외에 우리가 만들어낸
‘문화’라는 맥락 속에서 우리는 무지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는
종교적 신념도 포함된다. 사람이 종교를 만든 후 겪어온 역사가
이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불교에서 본다면 나름대로의 세계를
안고 사는 8만 4천의 서로 다른 중생이 있고, 이 각각의 중생에게
알맞은 가르침을 주고자 부처는 8만 4천 법문을 펼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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