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기하학

우리가 중학교에서 배우는 기하학은 자와 컴퍼스만을 사용해서 작도할 수 있는 도형이 대상이다. 이 기하학은 유한(有限)의 기하학이다. 여기서는 아무리 복잡한 도형일지라도 자와 컴퍼스를 반드시 유한 번만 사용하여 작도한다.

그래서 이 기하학은 무한히 구불구불한 해안선이나, 윤곽이 분명하지 않은 구름의 모습이나. 깨진 유리처럼 불규칙하고 우연적인 형태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인생을 ‘1차 함수’로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실존하는 자연의 대상은 유한 번의 자와 컴퍼스의 사용만으로 그의 실제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상대성원리로 우주의 공간을 다루고, 양자역학으로 원자의 세계를 파헤친 물리학이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이다. 기하학 역시 무한대(無限大)와 무한소(無限小)의 대상을 다루어야 하는 시기이다.

금세기에 거세게 불어 닥친 무한(無限) 개념을 중심에 세운 수학은 기하에서도 ‘무한’의 바람을 일으켰다. 그것은 자와 컴퍼스의 기하학이 아닌, 컴퓨터의 기하학이다.

물론, 컴퓨터가 그리는 도형도 분명히 유한 번의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모습은 결코 자와 컴퍼스로는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되풀이를 해야만 파악이 가능하다. 컴퓨터는 무한에 가까운 조작의 과정을 밟아 자연의 미세한 부분에 내포되어 있는 부분까지도 샅샅이 그려낸다.

거대한 우주의 모습, 극미 세계의 대부분의 도형들은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그의 이미지마저 상상하기 어렵다. 이 새 기하학은 컴퓨터에의 의존도가 매우 높은, 아니 컴퓨터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수학이다.

컴퓨터 기하학은 이제까지 금기로만 여겨왔던 무한을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수단으로 삼는, 이를테면 무한의 기하학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프랙탈 기하학’이라고 한다. 기하학에서 새로운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프랙탈과 카오스의 세계」(김용운 외)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