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수학적 언어
자연의 수학적 언어, 프랙탈
1940년대 측정 척도의 길이에 따라 달라지는 해안선과 국경선
등
지리적 특징을 보여준 리차드슨(L. F. Richardson. 1881-1953)의 연구 결과는 그 이후 유클리드 기하학의 패러다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던 주류 학자들에 의해 잊혀져 버렸다. 리차드슨의 연구는 이후 30여년이 지난 1967년 수학과 과학사에 새로운 혁명적
패러다임을 제공한, 시대를 거스른 광기의 수학자 만델브로(Benoit Madelbrot, 1924-)의 유명한 논문에 인용됨으로써 부활하였다. 그
논문은 이 분야의 앞선 연구자 리차드슨을 기념하는 의도를 담아 도발적인 질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 제목은 "영국의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이다.
물리적으로는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한계가 플랑크의 척도(Planck's
length, 약 1.6162412*10^-35m) 이하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수학적
추상화의 단계로 보면 이 척도는 무한히 작게 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길이는 무한으로 늘어 날 수 있다.
따라서 수학적으로 엄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임의의 시점에서의 선택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측정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척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답은 실제의 참값에 근사치도 될 수 없는 값이다. 결국 해안선의 길이는 인간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척도의 길이에 따라 결정되는 임의의
값이 있을 뿐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측정은 측정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직선과 단순한 곡선으로 구성된, 인간이 건설한 구축물들을 설명하는데는 유용하게 이용되지만 수많은 자연의 정경들(해안선의 길이, 산의 모습, 숲의
정경, 구름의 모양)의 모양은 2300여년 전에 발견된 유클리드 기하학의 어떤 모양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자연의 형태들을 좀 더 미시적으로
가까이서 보면 그들의 불규칙한 모습들에서 새로운 기하학의 문을 여는 특징들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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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는 고사리 잎의 한부분이 전체를 닮은 프랙탈 구조를 하고
있다. | 예를 들어 쪼개진 바윗 조각은 자신이 떨어져 나온 산처럼 생겼다. 나무가지들은 큰 줄기에서 작은 가지로 갈라질 때
원래 줄기의 모습과 유사한 모양을 가진다. 고사리와 같은 양치식물의 잎이나 브로콜리 같은 식물들도 전체에서 한 조각을 때어내어도 원래 모양과
유사한 형태를 유지한다. 이러한 특징들이 강의 줄기와 지류에서도 발견되며 신체의 동맥과 정맥의 세부구조도 자기반복적인 특징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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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의 작은 잎은 전체 구조와 동일하다. | 이런 자연의 예들에서 가까이 혹은 현미경으로 확대하여 본다해도 불규칙성이 제거되지 않는다. 대신에 자연의 사물들은
각기 다른 크기의 단계에서 같은 특징을 반복하는 불규칙성을 가지며 어떤 유클리드 기하학적인 특징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수학자 만델브로는 이를 "구름은 구가 아니고 산은 원추꼴이 아니며 해안선은 원이 아니고 돛배는 매끄럽지 않고 번개불이
직선으로 여행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표현하였다.
만델브로는 1975년 자연속의 이런 불규칙하고 단계별 조각조각들이 서로 닮은 구조를
갖는 특징을 라틴어 Fractus('부서진' 이란 뜻)에서 따온 프랙탈(Fractal)이란 용어로 이름지었다.
만델브로는
프랙탈을 "전체를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그 부분들 각각이 전체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불규칙하거나 파편화된 기하학적 형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수학사의 또다른 혁명 '프랙탈 기하학'이 탄생한 것이다. 어떤 구조안에 품어진 또 다른 구조들은 유사한 특징들이
반복되어 나타나며 작은 것은 큰 것의 축소판의 특징 즉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가지고 있다.
프랙탈의 발견은
자연계의 구조적 불규칙성을 기술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적 언어를 발견한 것이며 '혼돈과 무질서
속의 질서'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코흐의 섬(Koch's island)
전통기하학이 다루는 도형들과는 완벽히 다른
구조와 성질인 프랙탈 구조를 가진 경이롭고 신비로운 도형이 20세기의 여명기인 1904년 코흐(H.
von Koch, 1870-1924)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도형을 코흐의 섬(Koch's island)이라한다. 이 도형에는 '유한한 면적 속에 무한의 경계선이 존재'하는 자연의 성질을 닮은 신비한 역설이
숨어 있다.
코흐의 섬을 그리는 규칙은
단순하다. ① 변의 단위가 1인 큰 정삼각형을 그린다 ② 각변을
삼등분해서 길이 1/3인 선분 3개로 나눈다. ③ 분할된 각변의 중앙에 그 각변의 길이의 1/3을 길이로 하는 정삼각형을
추가한다. |
처음 단계가 완성되면 새롭게 생긴 도형은 삼각형에서 육각별 모양이 되며
이때 처음 길이의 1/3의 길이를 가지는 12개의 변으로 구성되며 이때 전체 변이 길이는 처음 삼각형 둘레길이는 3*(4/3)이 된다. 새롭게
생성된 각 변들에 대해 다음단계에서는 12개의 각변에 ②와 ③의 단계를 적용하면 48개의 변을 가지는 도형이 만들어 진다. 이 때 변의 수는
48개가 되며 그 때 전체 둘레의 길이는 3*(4/3)*(4/3)이 된다.
②와 ③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면 계속하여 가면 '코흐의
섬' 혹은 '코흐의 눈송이'라는 도형이 생기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코흐의 섬은 그 길이는 무한으로 향해가고
그 넒이는 시작하는 처음 삼각형의 8/5이 된다.
즉 경계선의 길이는 무한하고 그 넓이는 유한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도형이
발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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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흐의 섬을 만드는 절차. 코흐의 섬은 프랙탈 구조를 가진
도형이다. | 위의 코흐의 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해보면 알 수 있듯이 코흐의 섬은 단순 명료한 규칙을 적용하여 만들 수
있는 수학적으로 매우 잘 정의된 형태의 도형이다.
이 코흐의 섬에는 수학적으로 놀라운 특징들이 나타난다.
코흐의 섬의
해안선은 정의에 의하여 모두 연속 곡선이지만 또한 이 곡선은 원과 같은 매끄러운 곡선이 아니며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극히 미세한
부분에서는 인간의 시각능력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곡선 위의 아무리 가까운 어느 두점 사이에도 확대하여 보면 코흐의 섬의
정의에 의해 무한히 많은 코흐의 섬 형태를 닮은 또 다른 삼각형들이 그 안에 지그재그 형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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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흐의 섬을 만드는 규칙을 삼각형의 내부로 적용한
경우. | 이 섬의 해안선은 곡선임에도 곡선과 연속하는 곡선상의 어느 한점이 만나는 직선인 접선을 해안선의 어느 지역에서도
그릴 수 없다. 더구나 곡선사이 어떤 두점 사이 거리는 무한하면서도 이 닫힌 곡선들에 만들어진 섬의 면적(코흐의 섬의 면적은 처음 시작 상태의
삼각형의 면적보다 별로 크지 않은 유한한 면적)을 가진다. 위의 방식으로 삼각형을 안쪽으로 향하게 되면 즉, 삼각형을 바깥쪽으로
더하는 대신 계속해서 빼나가게 되면 왼쪽의 그림과 같이 장식 레이스 모양이 된다. 이 레이스 모양은 코흐의 섬과 같이 무한한 둘레를 가지지만 그
면적은 처음 삼각형의 (2/5)가 될 뿐이다.
어떻게 유한한 영역에 무한한 경계선을 가질 수 있을까?
수학자들은 경이로운
이런 기이한 성질들을 가진 코흐의 곡선과 이와 같은 성질을 가지는 여러 곡선들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석고화된
상상력으로는 이러한 도형을 이해할 수 없어 이런 현상들은 조작된 허구로 진단하여 실세계의 현상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수학의 병적 상태로
내몰아 버렸다.
프랙탈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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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차원의 한 척도인 하우스도르프 차원의 개념도.
N은 분할된 갯수, D는 차원, r은
배율. | 코흐의 섬에서는 어떻게 유한한 영역에 무한한 경계선을
가질 수 있을까? 일반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이 곡선에서는 최종의
극한곡선에 가까운 유한한 각 곡선에서는 거기에 상응하는 배율로 확대하면 그 곡선의 성질을 상세히 묘사할 수 있다.
그러나 코흐의
섬에 해안선은 아무리 가까운 두 지점을 연결하는 곡선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또 다시 무한대의 유사한 코흐의 섬들이 존재하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사태를 전통 수학자들은 무시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류의 다수 수학자들이 이러한 성질들을 수학의 병적상태로 몰아 버려
묻혀져 있을 때에도 이러한 도형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이들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유클리드 기하학 기본 가정들을
뛰쳐나와 기하학의 통상적 차원들과는 다른 프랙탈한 특징을 가진 도형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기하학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1919년 독일의 수학자 하우스도르프(Felix Hausdorff, 1868-1942)는 차원(次元,
dimension)의 개념을 정수에만 국한 되지 않는 실수 영역까지 일반화하는 차원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하우스도르프에 의해 제안된, 전통기하학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는 실수를
포함하는 차원은 프랙탈 현상이나 이런 특징을 가진 도형을 설명하는 적합하고 유용한 도구가 되고
있다.
통상적 유클리드 기하학은 3개의 차원으로 구축되어 있다. 일상으로 만나는 곡선과 직선은 1차원이다.
이들은 앞뒤 방향으로만 운동할 수 있다. 평면 또는 구면 다각형 등과 같은 곡면은 2차원이다. 2차원 곡면에서는 앞뒤와 좌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 입체적 대상은 3차원으로 앞뒤ㆍ좌우ㆍ상하 운동이 가능하다. 자동차나 철도는 1차원으로 운동하며, 배는 바다라는 곡면상을 2차원으로
운동한다. 비행기는 3차원 상에서 운동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현재까지 통상적 설명으로
3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을 제4차원으로 설정하고, 현대 물리학에서는 11차원 이상을 가정하는데 여기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식하는 3차원과 중력, 자기력 등과 같은 자연의 기본적 힘들을 포함 8차원 이상을 추가한다.)
그러면 섬의
해안선의 어떤 부분을 조밀하게 잘라도 그 안에 원래 해안선의 구조를 닮은 도형을 발견할 수 있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가지는 코흐의 섬의 해안선은 몇 차원 일까?
이는 하우스도르프의 프랙탈 차원의 원리를 적용하여 설명할 수 있다. 정사각형의
길이를 3배로 늘리면, 2차원 평면 구조에서는 3의 제곱인 정사각형이 9개 필요하다. 그리고 3차원 정육면체는 각 변의 길이가 이것의 3배인
자기 유사성 도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육면체가 3의 3승인 27개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자기
유사성을 가지는 도형에
적용되도록 일반화 하여 보자. 일반적으로 N개의 분할된 작은 단위로 이루어진 어떤 프랙탈 대상에 대하여 N을 변의 크기의 비(r)의
거듭제곱으로 나타낼 때, 지수 D를 하우스도르프 차원이라 한다.
r(늘어난 비율)^D(차원)=분할된 N, 이를 log로 취하면
D=(log N)/(log r) N: 조각의 개수, D: 프랙탈 차원 r: 배율로 표시
된다. |
 프랙탈
차원
이 식을 이용하여 코흐의 섬에 적용해보면 코흐의 섬에 한변의 단위가 1인 선을 3등분하여 측정단위가 (1/3)로
줄어 들 때 마다 선분의 수는 4배로 늘어 난다.
이 경우에 위의 식에서 N=4이고 배율은 r=3이다. 위의 식에
의해 차원 D는 D=log4/log3=1.2618이다. 결과적으로 코흐의 섬은 1.2618이란 실수값을 가지는 현실을 풍부히 반영하는,
전통 기하학이 호용하지 않던 실수값을 가지는 프랙탈 차원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양하게 제안되고 있는 프랙탈 차원의 한
유형으로 하우스도르프 차원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프랙탈 차원은 숲, 나무, 구름 등의 자연과 코흐의 섬과 같은 전통기하학이 담지 못하는 실세계
혹은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의 열쇠가 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