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정체는 한마디로 우주질서의 표상이다. 이를테면
운동에 관한 뉴턴의 법칙이나 행성 운행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을 보면 이 주장의 의미는 극명해진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가지고 있는 우주에 대한 두
가지 견해는 우주는 절대불변의 법칙에 따르며 만물은 분명하게 규정된 객관적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과 객관적 실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수학의 역할은 엄밀한 '법칙'과 유연한 '변화'를 결합, 초월하는 새로운 질서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질서라는 것
또한 사실은 새롭지 않은 원래 자연의 제 모습인 것이다.
수학의 절대성은 B.C. 380년경 플라톤이 주창한 것처럼 수학적 주장은 영구불변의 진리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그 후 칸트가
계승했고 수학은 이데아로서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수학적 원리는 발견하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 골자이다.
그러나 우주가 변화한다는 관점과 '수학=우주 질서의 형상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플라톤이 주장하는 수학적 진리의 불변성은 우주를 탄(乘)
상대적 불변이요, 상대적 절대인 것이다.
한 마디로 수학은 단지 우주 진리의 형상화일 뿐이다. 여기서 우주는 천체 몇 조각이 돌아가는 시공이 아니고, 절대의 우주이다. 그러므로
수학도 우주의 그림자로서 절대적 가치로 존재하는 것이다.
수학의 대상은 다양하다. 옛날에는 그 대상이 수와 연산에 국한됐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변위,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 등
인간의 삶을 포함한 자연 전체로 그 대상이 확장됐다. 수학의 본질적 대상은 한마디로 패턴이다. 우주질서가 패턴으로 정연하기 때문이다.
패턴으로는 년, 월의 일수, 계절, 방위, 동물의 다리 수, 꽃잎의 수, 행성의 운동과 같은 수의 패턴, 각종 원형 패턴, 입체패턴,
대칭성과 같은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프랙탈이나 카오스처럼 패턴이 아닌 것 같이 보이는 패턴 등이 있다. 인간의 정신문화는 패턴을 인식, 분류,
이용하는 정형화된 사고체계를 발전시켜오고 있으며, 수학은 패턴을 조직, 체계화하는 연모이다.
수학의 목적은 미(美)의 추구에 있다는 것이 영국의 수학자 하디의 주장이다. 하디는 이 미란 것이 수학적 주장 속에 있는 아이디어의 농도에
있다고 했지만 사실 수학의 미는 자연과 우주의 모습을 투영하는 정도에 의존한다.
자연이 절대적 미를 갖고 있기에 자연의 표상으로서의 수학은 당연히 그 목적을 미에 둘 수밖에 없다. 자연이 인간에의 효용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듯이 실제로 수학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실용성과 무관하다. 수학의 이차적인 목적이 효용성이다.
하지만 이것도 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표현하고 변화를 예측한다는 측면에서 역시 자연 부속적 목적으로 볼 수 있다. 우주가 아름답듯이 수학은
아름답다.
인간의 효용성과 무관하게 우주가 존재하듯이 그렇게 수학이 또한 존재한다. 수학의 최고의 목적을 미의 추구에 두는 것은 이 사실에 기인한다.
수학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은 완벽한 미의 자연과 우주 질서의 형상화란 수학의 본질적 속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