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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밀레니엄을 열던 2000년, 시카고의 미술가 칵은 프랑스 농업연구소
과학자들과 협동해서 초록색 형광을 내는 토끼를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었다. 농업연구소가 긴급히 그의 토끼를 압수하는 바람에 토끼가
전시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보다 몇 년 전 인간배아를 사진으로 찍어 전시한
헬렌 채드윅의 작품만큼이나 사회 각 층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첨단 과학 시기의 예술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했다.
유전적으로 변형된 생명체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가?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인가?
서구의 경우 최근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표방하는 다양한 집단과
이를 후원하는 재단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굴벨키안 재단은 ‘과학과
예술’ 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아트카탈리스트 그룹은 예술가들이
병원에서 실습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의 웰컴 재단도 사이아트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과학자와 예술가의 만남을 유도한다.
- 서구선 미술·문학 교류왕성 -
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문학으로도 확장된다. 캐나다가 자랑하는 최고의
작가 마거릿 앳우드는 2003년 그녀의 열한번째 소설 ‘오릭스와 크레이크’를
발표했다. 소설은 유전적 완벽성에 중독돼 있고 인간에 대한 유전적
변형이 다반사로 이루어지는 암울한 미래 사회를, 유일하게 생존한 인간일
수도 있는 ‘스노맨’의 회고를 통해 전율할 만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전에도 앳우드는 ‘시녀 이야기’와 같은 소설을 발표했다.
이런 소설들은 SF 소설가가 아닌 소위 ‘정통’ 소설가에 의해서 쓰여진
작품들로, 미래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20세기 후반기를 통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명으로 꼽히는
토머스 핀천도 과학기술 소재를 잘 이용한다. 그는 실제로 대학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이기도 하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심지어 괴테의 ‘파우스트’에 버금가는 걸작으로 꼽히는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는 주인공이 로켓의 착지를 예측하는 자신의 능력의 기원을
찾아나가면서 현대 과학의 끔찍한 실험에 직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의 근작 ‘메이슨과 딕슨’은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남·북을
갈랐던 ‘메이슨-딕슨 라인’을 처음으로 측량한 영국 천문학자 겸 측량사
메이슨과 딕슨의 여정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몇년 전엔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원자탄 연구를 소재로 삼은
연극 ‘코펜하겐’이 런던, 뉴욕, 토론토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다. 물리학에서의
불확실성과 인간 행동의 불확실성, 우리 기억과 역사 해석의 불확실성을
중첩시킨 연극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극단이 이를 준비했지만, 수익성이
없을 거라는 판단 때문에 막을 올리는 것을 포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SF 영화를 만들어도 흥행이 되지 않는다. 어쩌다 힘들게 제작해 상영해도
‘어설프다’는 비판만 남긴 채 금세 스크린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와 과학계는 과학문화의 진흥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과학문화도시를 선포하고, 학생들에게 과학을 쉽게 알리기
위해 사이언스 앰배서더(과학홍보대사)를 임명하고, 고위층에게 과학을
알리기 위해 ‘리더들을 위한 과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과학홍보담당자를
위한 과학문화아카데미, ‘과학 및 정책 최고과정’ 등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 간극 좁힐 프로그램의 부재 -
그러나 과학자와 인문학자, 예술가들을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은 눈에
띄지 않는다. 과학과 예술은 만남을 통해 서로를 발전시킬 게 분명한데도
소설가, 영화감독, 화가, 음악가, 철학자가 RNA유전학자, 줄기세포연구자,
수학자, 나노과학자, 뇌과학자들과 만나 과학의 프런티어를 깊게 탐험하고
과학의 예술적, 철학적 함의에 대해 밤새 토론할 기회와 공간이 우리에게는
없다. 학생들에게 과학문화를 맛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학을 다룬
소설, 시, 영화, 연극, 철학도 그만큼 중요하다. 예술과 과학이라는
‘두 문화’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지 않는 한 과학문화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문화로 뿌리내렸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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